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허정무/지도자 경력 (문단 편집) === [[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]] 감독 2기 === ||<-5><:> {{{#FFFFFF ''' 자세한 내용은 [[허정무호|{{{#FFDD73 허정무호 }}}]] 문서를 참조 바랍니다. ''' }}} ||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youtube(0fVs23O3QGk)] }}} || 2007년 12월, [[핌 베어백]]의 후임으로 국가대표팀 감독에 취임했다. 2009 [[AFC 챔피언스 리그]]에서 [[포항 스틸러스]]가 우승한 이후 포항의 공격적인 축구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일부 팬들이 '''맨날 무승부만 하는 허정무 말고 포항 스틸러스 감독 [[세르지오 파리아스]]를 국대 감독에 앉히자!'''는 주장이 나왔지만, 정작 허정무는 2007년 파리아스 매직이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K리그에서 우승한 포항 스틸러스를 FA컵 결승전에서 '''1, 2차전 통틀어 3:2, 3:1로 발라버리고''' 포항의 더블을 저지한 전력도 있다. 적어도 둘의 맞대결에선 허정무가 파리아스보다 위에 있는 셈.[* 물론 이는 [[포스코|같은 모기업]]이라 포항과 전남이 선수와 스태프를 자주 스와핑(?)(원래 맞교환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단어이다. 통화스왑이 그 예시. 다만 일반인 사이에선 좀 그런 의미로만 쓰이긴 한다....) 하는데다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. 게다가 당시는 전남이나 포항이나 전력이 엇비슷했다. 리그 우승한 팀이랑 10등팀이 어떻게 엇비슷하냐고? 파리아스 매직이란 신조어가 만들어진 이유 자체가 득실차가 -4였던 5등팀 포항을 6강 PO부터 시작해서 마침내는 우승까지 시켰기 때문이다. 정규리그만 따지고 보면 파리아스 시절에서 가장 나쁜 성적이었다. 진짜 전성기는 ACL 우승이란 결실을 맺은 2009년. 다만 이후 국가대표 감독이 되면서 [[전남 드래곤즈]]는 [[박항서]]를 감독에 앉히게 되었고, 나란히 2008 [[AFC 챔피언스 리그]]에 진출한 포스코 동맹 두 팀은 당시 28강 조별 본선 탈락으로 K리그 망신이라는 오명들을 쌍으로 뒤집어 쓴다. 포항의 경우 2009년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으로 전화위복에 성공했지만...] 과거 [[움베르토 코엘류]], [[핌 베어벡]] 두 감독이 급작스레 사임하면서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, 그때마다 선수들 사이에서 잡음이 새어나오지 않도록 내부 결속을 잘 이끌어냈다. 사실 2010년 월드컵 대표팀 감독이 되면서 까인 이유는 전적으로 축구협회의 [[언론플레이]] 때문인데, [[핌 베어벡]]의 사임 이후 [[믹 맥카시]](당시 [[울버햄튼 원더러스 FC|울버햄튼]] 감독)[* 축구 팬들에겐 선수들과 같은 반바지 입고 어깨동무하며 독려한 2002년 월드컵 아일랜드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익숙할 것이다.]와 [[제라르 울리에]](당시 [[프랑스 축구 연맹]] 기술고문)에게 오퍼를 넣었다고 했지만, 둘은 거절했다. 아예 오퍼를 넣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. 축구협회는 계속 외국인 감독을 알아보겠다고 언론플레이를 했지만 오퍼가 거절당했다고 발표해놓고는 몇 시간 뒤 뜬금없이 '이제 한국인 감독이 대표팀을 이끌 때가 됐다'며 허정무를 선임한 것이었다. 이러니 욕을 안 먹을래야 안 먹을 수가... 일부에선 허정무의 [[박지성]] 활용 문제를 놓고 논의가 분분하지만, 전술상의 실책으로 보긴 어렵다. 전통적으로 대표팀은 우수한 윙어가 많아 늘 경쟁이 치열했다. 또한 박지성은 수원공고 시절 스트라이커로 시작해서 [[명지대학교]] 시절 수비형 미드필더와 윙백이었고 히딩크가 윙어로 조련했으며 아드보카트는 공격형 미드필더 능력에 주목한 글자 그대로 멀티 플레이어다. 넘치는 윙어에 비해 부족한 중앙 미드필더 자원을 고려했을 때, 당분간 박지성의 포지션 고정은 요원할 듯 하다. 허정무호의 A매치 성적은 2009년 11월 15일 기준으로 14승 13무 1패. 2008년 초 데뷔전에서 [[칠레 축구 국가대표팀|칠레]]에 패한 것을 제외하면 압도적인 28경기 무패 행진을 이어가고 있었다. 2009년 여름에 있었던 오만전이 비공식 경기가 된 탓에 공식으로는 27경기 무패. 어쨌든 최종예선 전까지는 상대팀이 모두 아시아권인 것을 감안해도 뛰어난 성적이라며 옹호하는 사람과 무재배의 달인이라며 성과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로 나뉘었다. 11월 15일에는 덴마크와도 비겼다. 진짜 월드컵에서 '''[[무승우승|7무 우승]]'''[* 전혀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다. 다만, 현실적으로 이런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게 문제다. 3무승부로 32강 조별본선을 통과할 수 있는 [[경우의 수]]는 1위팀 2승 1무, '''2위팀 3무''', 3위팀 2무 1패, 4위팀 2무 1패 밖에 없다. 이 사례는 1998년 월드컵 B조에서 칠레가 달성을 하였으나 16강서 브라질을 만나며 탈락(16위).]하는 건 아니겠지만 싶어도... 하지만 11월 19일에 세르비아에 패하면서 무패행진이 끝났다.[* 웃긴 건 이 경기의 경기력 자체는 제법 괜찮았다는 평이 많았단 거다.] 허정무의 무재배 기술(?) 때문에 [[디시인사이드]] [[국내축구 갤러리]]에서는 [[허정무컵]]이라는 가상의 대회 짤방이 만들어지기도 했다. 2009년 12월 4일, 허정무호는 아르헨티나, 나이지리아, 그리스와 함께 32강 본선 [[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/B조|B조]]에 편성됐다. 당시 [[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]] 감독이던 [[디에고 마라도나|마라도나]]와 악연이 있기 때문에 어찌 될지가 관심사였다. 게다가 마라도나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인지 '똑똑히 기억하고 있다. 분명히 나를 걷어찼었다'고 언급을 했고 허정무는 '태권도로 걷어 찬 적 없다. 그랬다면 심판이 퇴장을 줬을 것"이라고 받아쳤다. 이 때문인지 남아공 월드컵 B조 본선에서 대한민국과 아르헨티나 간 경기를 앞두고 있을 때, 대한민국과 아르헨티나의 장외 신경전이 있었다. 2010년 2월 10일, [[동아시안컵]]에서 만만하던 [[중국]]에 '''[[중국 쇼크|0:3으로 대파]]'''당하면서 미친듯이 까였다. 게다가 스코어로도 그렇지만 경기력으로도 [[시망]] 수준이라 상당히 욕먹었다.[* 다만 이 경기 국대 선발 라인업을 보면 알겠지만 이전 경기들과 달리 미드필더 라인에 중미 4명을 기용했다. 다이아몬드도 아니었고 그냥 4-4-2였는데, 양쪽 윙 자리에 중미를 박아넣는 희한한 실험을 했다. 하지만 중국전 패배로 된통 욕 먹은 이후부터는 포지션 파괴를 자제했다.][* 포지션 파괴가 나쁜건 절대 아니다. 포메이션상 중앙 미드필더 성향의 선수를 측면에 배치하는게 왜 저러나 싶겠지만 실제 의도는 차라리 측면을 좀 내주더라도 중앙을 아주 두텁게 가져가면서 중원을 장악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긴 것이다. 실제로 이 경우 측면은 풀백이 공격적으로 임해서 메꾸고, 경기중 공격수 한명이 윙어 위치로 빠지면서 중앙미드필더들의 패스 선택지를 늘려주는 변칙 전술 중 하나이다. 문제는 그런 명확한 의도와 보완책 없이 단순히 머릿수 맞추기 용으로 중앙미드필더를 측면에 배치하면 전술이 답답해진다.] 그 와중에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"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언젠가는 와야 할 일이 오늘 왔을 뿐"이라고 해버려 더더욱 욕 먹는 중. 틀린 말은 아닌데, 문제는 하필 중국과의 무패 기록을 날린 날 할 말은 아니었다는 것. 2010년 [[설날]] 당일이었던 2010년 2월 14일, 동아시안컵 마지막 경기였던 한일전에서 일본에 '''3:1'''로 승리하였다. 일본 도쿄 원정에서 거둔 값진 승리였지만, 중국 쇼크로 인해 뒤돌아선 여론의 반응을 돌리기에는 무리였다. 오히려 일본 넷상에서 '이제 우리 감독 짤리는구나!' 하면서 환호성을 지르고 있는 미묘한 상황(…)이다.[* 물론 [[오카다 타케시]] 당시 일본 감독 역시 짤리지 않고 허정무와 마찬가지로 월드컵에서 원정 16강 성과를 거두게 된다. 팬들 여론이 부질없기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인 듯.] 그래도 다행히 코트디부아르를 상대로 한 3월 3일 평가전에선 수비라인을 끌어내린 전술을 사용하여 문제되던 자동문을 고장(...)내고[* 조용형과의 센터백 파트너 조합 변경 후 수비라인을 끌어내리니 자동문 조용형도 조율형으로 변신하여 드록바를 3, 4명이서 포위하여 쌈싸먹었다.] 2:0으로 승리하였다. 이후 남아공 월드컵을 앞둔 시기에 벌어진 에콰도르와의 경기도 2대0으로 이기고, 일본 사이타마에 가서 치룬 원정 한일전까지도 2대0으로 이겼다. 하필 두 번째 경기의 경우에는 [[일본 축구 국가대표팀]]의 월드컵 출정식이기도 했기 때문에, 경기 직후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일본의 출정식 행사가 진행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. 하지만 기쁨도 잠시 약체인 벨라루스와의 평가전에서는 져버렸기에 또 욕 먹었다. 결정적으로 상대가 꽤나 거칠게 태클을 하던 판에 센터백인 [[곽태휘]]를 부상으로 잃고 말았다. 왜 월드컵 비출전국이랑 해서 선수들만 날리냐는 원성도 나왔다.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youtube(7WU_yp7J0YY)]}}} || 그리고 대망의 [[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|2010년 월드컵]]의 첫 경기 상대인 [[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|그리스]]에게 승리하면서 '''FIFA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승리를 기록한 역사상 1번째 '순수 한국인 감독'이라는 기록을 획득했다.''' 그 승리 덕분에 당분간 [[까임방지권|까방권]]을 획득할 듯 싶었지만...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youtube(rkdgjnBexFI)]}}} || [[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|아르헨티나]]전에서는 1:4로 대패하면서 대차게 까였다. 물론 아르헨티나 대표팀이야 항상 전세계 탑5 안에 드는 국가이니 패한 것 자체는 그리 이상하지 않은 일이지만, 전술적인 면에서 비난의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.[* 이 당시에 히딩크가 아르헨티나전을 시청한 이후에 '한국은 축구가 아니라 야구를 했다'라며 허정무에 혹평을 했다는 악성 루머까지 돌았다. 하지만, 정작 원 출처라던 <풋볼 인터내셔널>에서는 그 인터뷰의 원문은 커녕 히딩크와의 인터뷰 자체도 전혀 찾아 볼 수도 없었고 [[http://sports.media.daum.net/soccer/news/a_match/breaking/view.html?newsid=20100621174208710|당연히 소설로 판명되었다.]] 당시 경기에 출전했던 [[카를로스 테베즈]]도, 경기 이후에 "한국 선수들이 그리스전처럼 공격을 하지 않아 놀랐다"라며 인터뷰를 하였는데 결국 아르헨티나를 두려워한 나머지 지나치게 수비적으로 나온게 오히려 아르헨티나 공격진이 자유롭게 활개치게 놔준 꼴이 되었다.] 아르헨티나전 패배 이후, 패배의 원인인 [[오범석]]을 아르헨티나전에 기용한 이유가 인맥 때문이었다는 악성 루머가 퍼졌다. 오범석의 아버지가 허정무와 같은 연세대학교 동문이자 축구협회 기술위원회 위원을 지냈고, [[한국실업축구연맹]] 이사이기 때문. 그러나 이건 말도 안되는 낭설인 것이 오범석은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주전 오른쪽 풀백이었고, 사실 이전 스페인과의 친선경기에서도 나쁘지 않은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.[* 원래부터가 오범석은 선수시절 동안 K리그에서 최고 수준의 풀백으로 평가받아온 선수다.] 그래서 아르헨티나전에 오범석이 선발됐을 때, 대부분의 전문가들도 차두리와 오범석의 장단점의 차이를 들며 찬성했지만 결과는... 그 후에 나이지리아전에서 오른쪽 풀백을 되찾은 차두리도 역시, 실점의 빌미가 된 실수를 하는 등 기동성 있는 선수들에게 자주 돌파를 허용하는 약점을 노출하기도 했다.[* 기동력과 공격력은 당연히 차두리가 훨씬 뛰어나지만 수비력과 공수밸런스는 오범석이 더 뛰어났다. 그렇기에 아르헨티나전 선발 자체는 이론적으로 맞았지만 실제 경기에서 대표팀 전체가 지나치게 수비적인 전술에, 아르헨 공격진의 파괴력이 보고 듣던 것보다 더 강력하자 심리적으로 위축된 점까지 겹쳐 포지션 이탈 등의 사고가 일어났고 결국 4골을 허용하고 말았다.]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youtube(O65cZfM2B_8)]}}} || 나이지리아전에서는 다시 그리스전 때의 포메이션으로 돌아갔고, 무승부로 나이지리아를 탈락시키며 '순수 한국인 감독으로서는' 최초로 '''대한민국 대표팀이 '원정 월드컵'에서는 '사상 최초'로 2라운드[* 이유형 감독으로 일본을 이기고 1954월드컵 16개국 본선에 진출(16위)한적이 있어서 최초 원정 16강이 아니다.]에 진출하는데 성공한 '첫번째' 순수 한국인 감독이 되었다.''' 비록 소극적이고 수비적인 전술 운용 및 선수 기용으로 인해 많이 까였지만, 그래도 결국에는 목표였던 '''원정 월드컵에서의 사상 첫 2라운드 진출을 이루어 냈으니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역사 속에 이름 한 줄을 명예롭게 남기게 되었다.''' 16강전에서 [[루이스 수아레스]]의 [[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|우루과이]]에게 아쉽게도 1:2로 석패하면서 원정 월드컵에서의 역사상 최초의 8강 진출은, 다음을 기약해야만 했다.[* 교체 투입한 [[이동국]]의 경우에는 좋은 슛기회를 잡았고 적당한 퀄리티의 슈팅까지 이어졌으나, 못 넣은 것이니 교체도 맞아 떨어졌다면 맞아 떨어졌다. 슈팅의 성공 여부야 뭐...] 하지만 우루과이는 무실점으로 16강에 진출한 데다가, 루이스 수아레스와 [[디에고 포를란]] 등의 최고의 기량을 가진 세계적인 선수들이 있었으며 최종 4위를 차지했다. 대등한 경기를 펼쳤으며 실제로 우루과이 대표팀 측에서도 "힘든 경기였고, 운이 좋아서 이겼다"고 했을 정도로, [[졌지만 잘 싸웠다|졌잘싸]]를 보여주며 '''월드컵을 15위'''[* 현재까지 대한민국 원정 월드컵 최고 순위]로 마무리 하였다. 현재 [[2022년]]을 기준으로, '''역대 '순수 한국인' 축구 대표팀 감독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FIFA 월드컵 원정 2라운드 진출을 달성했으며 동시에 '원정 월드컵'에서는 역사상 1954스위스월드컵 16개국 본선 진출(16위)[* 이유형 감독으로 일본을 이기고 16개국 본선에 진출했다.] 이후 '2번째'로 16강 진출을 이뤄낸 감독이다.'''[* 그 이후 [[2022 FIFA 월드컵 카타르|12년뒤에 열린 윌드컵]]에서, 비록 대표팀의 감독은 [[파울루 벤투|'외국인']]이 맡았지만 [[벤투호/2022 FIFA 월드컵 카타르/포르투갈전|대표팀의 역사상 '원정 월드컵'에서는 '3번째'로 16강 진출(16위)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.]]] 훗날 인터뷰에서 월드컵 이후 재계약을 안 한 이유에 대해 역대 국가대표팀 감독은 항상 잘려서 나왔는데, 내 발로 걸어나오는 선례를 한번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 재계약을 안하고 스스로 나왔다고 한다. 하지만 이후 감독이 두차례나 바뀌는 파행 속에 [[2014 FIFA 월드컵 브라질|2014 브라질 월드컵]]에서 한국 대표팀이 실망스러운 성적을 거두자 그때 너무 성급하게 판단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고 밝혔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